책 <붕대감기>
서연과 진경은 오랜 친구지만 성인이 되고나서 연락이 뜸해졌었고, 결국 한동안 서로의 소식을 모른채 지나다가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 서연은 프리랜서 작가로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진경은 남편과 결혼하여 아이 하나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가정주부가 되었다.
붕대감기는 서연과 진경이 교련시간에 붕대감기 시험을 치르는 과정을 나타낸다.
미용실 실장인 혜미와 그녀를 존경하고 따르는 지현
서균엄마와 진경
늘 혼자였던 서연과 늘 사랑받는 아이었던 진경
인상깊었던 구절들
원색의 크레파스로 아무렇게나 북북 그어놓은 듯한 날것의 감정들
너의 꿈꾸는 듯한 문장들은 빛나는 보물이었는데, 지상의 삶에 밀착되어 자갈과 흙과 모래 들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세연은 학교가 끝난 뒤 하교하는 십대 학생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특히 남녀공학인 학교에서는, 이제 화장을 하지 않으면 따돌립과 놀림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책들을 찾아 읽고, 해시태그를 달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들을 꼼꼼히 읽으며, 세연은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외모 강박과 강요된 사회적 여성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의 움직임은 분명히 옳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생각이었는데, 이제 막 시작된 이 흐름을 따라잡아 거기 동참하지 못하면 자신은 또다시 왕따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생활을 해왔을 뿐 세상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는 부채감,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과격함을 지니고 세상과 싸우겠다고 나선 어린 여성들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다는 생각, 저 사람들이 더 나은 곳으로 아주 멀리까지 가게 응원해주고 싶다는 마음
"우린 승객이었을 뿐, 그동안 이 버스에서 한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던 거지.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스스로 운전을 할 기회가 주어진 거야. 나는 단지, 멍한 얼굴로 읽을 수 없는 노선표를 들여다보며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어. 자기 삶이 잘못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고 외로워서 그 사람들이 울고 있을 때, 다가가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줄거야."
"하지만 우리 이제 어른이잖아. 언제까지나 무임승차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최소한의 공부는 하는 걸로 운임을 내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건지, 응급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정도는 배워둬야 운전자가 지쳤을 때 교대할 수 있잖아."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 그래서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 기대를.
페미니즘과 마주하는 여정에서 달갑지 않지만,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던 모순적인 나의 모습들을, 그 당시 친구들과 나눴던 고민들을 잘 담아놓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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