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 (1)
2022년에 들어서 특히 마음 속 한 쪽이 텅 빈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글을 통해 나를 괴롭혔던 생각과 고민을 마주하고 나니,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그 방향은 다시 찾을 수 있었는데, 왜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 다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지구 반대편 케냐에서 개발을 조금씩 배우고 한국에 와서 개발자가 되기까지 나는 어떤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이 강력한 계기가 되어 행동하게 된 것 같은데, 개발자가 되고 난 뒤, 바쁘게 현생을 살아가다 보니까 정착 처음의 문제의식은 흐릿해지고 하루하루 눈앞의 성장만 쫓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글을 통해서 내 문제의식을 다시 뾰족하고 선명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이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영감을 받은 두 가지 서비스, M-PESA 와 Andela
M-PESA, 스마트폰 없이 쓸 수 있는 전자화폐
Hello, world
를 출력해보는 것을 개발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내가 개발을 처음 만난 것은 케냐에서였다. 당시의 나는 한국의 NGO 를 통해 파견되어 일을 하고 있었고, KOICA 의 지원을 받은 가축대출사업 프로젝트를 시작부터 운영하고 있었다.
약 370일 정도를 케냐에서 생활을 하며 IT 서비스가 그 곳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특히나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M-PESA
라는 서비스였다.
M-PESA 는 케냐의 대표 이동통신사인 Safaricom 과 영국의 IT 기업이 협력해서 만든 모바일 화폐 서비스로, 쉽게 말하자면 '전화시간'을 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이다. 케냐 전국에 퍼져있는 M-PESA 충전소에서 전화시간을 돈을 주고 사면, 전화번호를 통해 얼마든지 모바일 상에서 전화시간을 주고받으며 화폐처럼 쓸 수 있는 것이다. 이체 뿐만 아니라 실제 결제도 가능한데, 이는 내가 살았던 수도에서 6시간 떨어진 시골에서도 가능했다.
이 서비스는 여러모로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대략 아래와 같다.
금융 인프라가 탄탄하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은행계좌가 없는데, 이들도 계좌개설없이 손쉽게 돈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지 않기에 모바일 앱과 더불어서 일반 전화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ARS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국적으로 충전소가 잘 구축되어있다. (수도에서 6시간 떨어진 깡 시골에서도 충전소가 곳곳에 존재함)
이체 뿐만 아니라 실제 오프라인 상에서 결제도 가능하다.
이체내역을 온라인 상에서 확인 가능하다. (기업의 경우, 사업비의 집행 등을 투명하게 관리 및 증빙할 수 있음)
모바일 페이를 밥먹듯 사용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게 뭔 대수냐-' 싶겠지만, 케냐의 스마트폰 보급률과 계좌개설률이 낮다는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거의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전자화폐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NGO에서 일하고 있었던 내가 '사업비를 투명하게 집행하고 그 이력을 증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했을 때에도 M-PESA는 좋은 해답을 주었다. 케냐에서 시골의 경우, 아직도 현금을 쓰게 되면 수기로 직접 적어서 영수증을 받을 수 있는데, 아시다시피 이런 영수증의 경우, 조작이 쉽기 때문에 증빙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까지는 이런 증빙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그래도 M-PESA 를 쓰고 부터는 이런 내역을 보다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어서 케냐에서 사업을 하는 내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안전하기까지 하다...!)
또한 이 무렵 뉴스기사에서 M-PESA 를 사용하면서 버스의 무장강도로 인한 피해가 줄었다는 기사를 읽게 되면서, M-PESA 에 대한 감탄은 더욱 커졌다. 기존에는 시골에서 도시로 돈을 벌러 갔던 사람들이 다시 본가로 돈을 보내기 위해 마타투(케냐의 버스와 비슷한 교통수단) 기사들 손에 돈을 부쳤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마타투는 무장강도들의 표적이 되었고, 그렇게 잃어버린 돈들은 현금이기 때문에 추적도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 M-PESA 서비스를 이용하고부터는 돈을 원격으로 바로 송금할 수 있게 되어 이런 위험들이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때 내가 깨달은 것은 두 가지 였는데, 말하자면 아래와 같았다.
정부의 인프라가 탄탄하지 않은 곳에서 오히려 기술적 혁신이 더 빠르고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IT 서비스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아프리카에도 IT 인재들을 위한 원격근무를, Andela
같은 시기에 매일 구글 알리미를 통해 받아보던 아프리카 관련 뉴스 중 하나를 통해 Andela
라는 기업을 알게 되었다. Andela 는 뉴욕의 스타트업으로 Soft Bank, Google Ventures 등 다양한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기업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기업은 전 세계의 IT 인재들을 전 세계의 IT 기업들과 연결시켜주는 인재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보면 잡코리아나 원티드와 같은 흔한 잡 플랫폼 같은데, 이들이 하는 일들은 그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포인트는 대략 아래와 같다.
아프리카의 IT 인재들을 실력 평가하여 국경을 넘어서 원격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전 세계의 기업들과 연결해준다.
그 과정 중, 필요하다면 2-4년정도 원격 프로그래밍 교육을 실시한다.
최고의 IT 인재가 필요한 전 세계의 기업들은 역시 국경에 제약을 받지 않고 우수한 인재들을 채용할 수 있다.
이 서비스가 의미있는 이유는 아직 농업이 국가 산업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IT 인재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그 시야를 넓혀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원격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아프리카의 인재들이 국경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원격으로 교육을 받고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Andela
라는 서비스가 나에게 준 영향은 좀 컸던 것 같다. 케냐에서 NGO에 소속되어 지역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내가 약 370여일동안을 머물며 느꼈던 문제의식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안되지 않나
여느날처럼 출근을 하는 길이었다. 회사의 택시기사분과 평소처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출근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그 분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 우연히 알게된 다른 케냐의 젊은이의 경우,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는데도 갈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아서 그냥 오토바이 택시기사가 되었다고 했다.
한발자국 뒤에서 나와 동료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무수히도 많은 전세계의 NGO와 국제기구들이 그곳의 사람들이 어린시절부터 기아에서 벗어나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 학교에 갈 때 쯤이면 교육활동도 제공하며 심지어 어른들을 대상으로는 직업교육활동을 하고 지역개발사업을 벌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시절부터 학교에 가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 생의 모든 순간들을 함께해도, 결국은 일자리가 없어서 생계를 위해 다시 택시기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 곳의 사람들도 본인이 좋아해서 선택한 공부를 마음껏 하고 적어도 그와 관련된 일을 찾아 시행착오도 경험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어난 국가와 제한된 국경, 성별이나 종교, 인종에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꿈꾸는 일을 하며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렵, Andela
를 알게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있던 문제의식을 IT 서비스로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그 기업을 보면서, 나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며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국가, 국경, 언어, 성별, 인종 등 주어진 환경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
인생을 관통하는 꿈이 생겨버린 것이다 🤗 이 꿈을 이루는데 문제가 되는 요소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평생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꿈에 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서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려면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까?
참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꿈이라서 몇날 몇일을 고민하다가 우선은 아래와 같이 두 가지 큰 전제조건을 생각해냈다.
개인은 본인만의 철학을 기준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국가, 국경, 언어, 성별, 인종에 따라서 차별이 없는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위의 두 가지가 모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아마 그 이외에도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원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게 하다가는 시작도 못한다!
우선 위의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쳐간다. 아마 한 스텝을 내딛고 나면 지금과는 또 다른 문제들과 해결책들이 보일 것이다. 그럼 그때부터 다시 생각해 다음 스텝을 만들어가면 된다.
글이 다소 길어지고 있으므로 위의 두 문제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의 내용은 다음편에서 다뤄보겠다 🙂
Last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