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일

중국어 방 사고실험

어제 읽은 책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빈 방에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중국어 답변 문장에 적힌 책과 함께 존재하고, 외부에서 그 방을 볼 수 없을 때, 중국어로 적힌 질문을 전달하고, 그 방 안의 사람이 아무 문장이나 찾아서 중국어 답변을 한다면, 그 사람을 두고 중국어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함께 나온 사고실험의 예시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중국어방 사고실험에서 껍데기처럼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내가 어떤 개념과 지식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했는가. 나는 열정적이다. 쉽게 타오른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마스터할 것처럼, 모든 것을 흡수할 것처럼 달려들지만, 이내 불꽃은 쉽게 사그라들고 항상 남는 것은 껍데기 뿐이다.

나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치만 빨라서 겉핥기 식으로 호로록 개념을 흡수하고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쉽게 자만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떳떳하지 못하고 전문가가 될 수 없다.

지금의 내가 괴로운 이유도 그러한 부채들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동안 껍데기의 삶을 살아왔기에, 중국어를 모르면서 중국어를 아는 체 했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감당해야할 것들이 물 밀려오듯 몰려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자. 진짜 알았다고 할 때까지, 진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때까지 묻고 파고들자. 제대로 하자, 뭘하든. 그래야 전문가가 될 수 있고 그래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겉핥기 식으로 대충 공부하다가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던 고2 시절.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진짜 모든 개념을 이해할 때까지 계속 질문하고, 꼼꼼하게 파고드는 연습이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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